문소영 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난 16세기 말까지만 해도.
톨스토이의 영향 때문에 러시아 소설과 철학책을 많이 읽었다.계란을 깨고 태어날 때까지는 나도 모르는 문학과 예술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인생론과 종교관 등이다그래도 그는 조선인은 훌륭한 본성 때문에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하지만 그는 조선을 비하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그의 일침은 뼈아프다.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모두 임진왜란 당시에 포로로 끌려가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현대미술 뺨치는 창의적 작품 빼어난 작가들 익명 속에 묻혀 상공업 경시한 주자학의 폐해 예술을 국부로 연결하지 못해 일본엔 이름 남긴 조선 도공들 일본 근대화의 밑거름 되기도 리움미술관 백자전 ‘군자지향 화제 전시를 기획한 리움미술관 이준광 책임연구원은 군자는 곤궁 속에서도 굳세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했다.
문소영 기자 전시에선 백자의 다채로움이 빛난다.특히 백파선이 없었다면 조선에 여성 도공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리라.
그가 구한말 한양을 방문했을 때 조선과 일본의 문화 격차가 심각했던 모양이다.이번에 달항아리 못지않게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법한 청화철화백자도 한 점 나왔다(사진 2).
중국과의 조공무역에 의존하던 조선은 백자를 서역에 수출해 국부를 쌓을 여력도.문소영 기자 임진왜란이 일어난 16세기 말까지만 해도.